2015년 6월 30일 화요일

상대성이론에 대해서 알아보자

상대성 이론
상대성 이론(相對性理論,theory of relativity) 혹은 단순히 상대성(독일어: Relativität, 영어: relativity)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제창한 시간과 공간에 대한 물리 이론으로,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나뉜다.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서로 다른 상대 속도로 움직이는 관측자들은 같은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난 것으로 측정하며, 그 대신 물리 법칙의 내용은 관측자 모두에 대해 서로 동일하다.
 
상대성 이론은 단순한 자연 법칙이 아니고 일종의 사고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상대성 이론은 인식에 대한 대변혁을 일으킨 것이다. 추상적 수학 개념과 세밀한 관측이 자연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고 알려준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아이작 뉴턴이 해결하지 못했던, 측정의 대상이 되는 물체와 측정의 기준이 되는 기준 좌표계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고민에서 상대성 이론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상대성 이론은 돌파구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심각하고 깊은 옛 이론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생겨났다. 이 새로운 이론은 일관성과 간결함을 유지하면서 옛 이론의 모순을 강력히 해결한다.”
아인슈타인, 물리학의 진화에서
일반 상대성 이론은 1916년에 아인슈타인이 발표하였다. (먼저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에서 19151125일에 제출) 일반 상대성 이론은 뉴턴의 만유 인력 법칙을 대체하는 새로운 수식을 제시하는데, 이를 이용해 중력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미분 기하학과 텐서라는 수학적 개념이 필요하다. 특수 상대성 이론이 관성 좌표계의 관측자만을 다루는 데 반해,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는 모든 기준계의 관측자가 동일하다. 물리 법칙은 관측자가 가속 운동을 하는 경우에도 모두 동일하게 적용된다. 중력은 시공간의 휘어짐으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곡률이 수학적으로 비 관성 좌표계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은 질량과 에너지가 시공간을 휘게 하고, (빛을 포함한) 자유 입자들이 이렇게 휘어진 시공간 속에서 움직인다는 방식의 기하학적인 이론이다. 단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미시세계에서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즉 미시세계에서는 양자역학을 도입하게 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생전에 미시세계에서의 상대성 이론의 불일치를 부정하였다. 이때 나온말이 그 유명한 "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불확정성 원리를 비판) "이다.
 
아서 스탠리 에딩턴은 최초로 일반 상대성 이론에 대한 실험을 하였으며, 일반 상대성 이론을 지지하는 결과를 얻었다고 발표하였다. 오늘날, 에딩턴의 실험결과는 오차 범위내에서 뉴턴역학과 큰 차이가 없는 결과임이 알려졌지만, 에딩턴은 상대성이론과 일치하는 데이터를 중심으로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렇게 해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은 과학계 전반에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 뒤, 에딩턴의 실험보다 더 정밀한 수많은 실험들이 일반 상대성 이론의 각종 예측이 옳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2015년 6월 29일 월요일

헤르만 헤세에 대해서


헤세의 문학적 특성
헤세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전기 중의 하나는 1927년 위고 발(Hugo Ball)이 써낸 전기인데, 그는 헤세를 "찬란한 낭만주의 대열의 마지막 기사(騎士)라고 표현했다. 그는 또 끝없이 낭만을 추구한 작가로 기억할 만하다. 항상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청춘을 그리워했으며 이성을 향한 동경이나 호기심, 그 시절의 감미로운 심리묘사들이 잘 드러나고 있다.
 
헤세의 작품이 갖는 자전적 경향은 그의 생애의 마지막 18년 동안에 나온 산문들에서 숨김없이 나타난다. 헤세의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작중 인물로 본인이나 자기 인생에서 인상 깊게 경험한 인물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헤세의 글에서는 인간적인 냄새가 난다. 원초적 인간본능이라 할 수 있는 청춘에 대한 그리움과 자연을 향한 동경, 자유를 꿈꾸는 인간적 해방의 가치가 녹아있기에 현대인들에게 큰 호소력을 갖게 되었다. 현대문명이 자연과 유리되면서 대중은 외톨이로 전락했으며 인간소외는 강화되었고 우울증은 깊어지고 있다. 섬세한 심리의 소유자로서 일찍이 젊은 시절부터 정신병적 고통을 경험한 그는 그런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시, 음악, 그림 등을 통해 자연과 사회에 화합하는 삶의 길을 모색해왔는데, 이러한 그의 경험과 심리과정은 오늘날 정신적 외로움을 호소하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영감과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또 그가 추구한 것은 인간의 내부에 공존하고 있는 양면성을 발견하고, 그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통일과 조화를 꿈꾼 것이다. 낮과 밤, 남자와 여자, 선과 악, 이성과 감성, 신성과 마성 등 자연과 인간내면 세계의 양면성을 관찰하고 이들의 조화를 꿈꾸었다. 이질적인 대립을 통해 양자가 맞서는 긴장을 아름다운 형태로 지향함으로써 보다 높은 통일을 추구한 것이다. 데미안은 인간 내면에 공존하는 어두운 세계와 밝은 세계가 하나의 세계로 통일하기 위한 싸움이고, 로스할데는 남성과 여성, 속박과 자유, 시민성과 예술성이 끝없는 대립상태로 이어지면서 자유를 얻기 위한 과정이 그려졌고, 크놀프는 인간의 사회적 정주본능과 인간 원초적인 방랑본능의 대립을 통해 인간적 삶의 길이 무엇인가 묻고 있다.
 
지와 사랑(나르치스와 골트문트)에서도 신학교라는 지성적 세계에 속했던 골드문트가 항상 지성적 인물 나르치스를 그리워하면서도 자유와 감성의 세계를 탐구하고픈 열망으로 끝없이 방랑하였고 그런 감성의 힘을 미술과 조각을 통해 예술적 세계의 완성으로 나아가는 인물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처럼 그의 많은 작품에서는 안정된 기성의 세계에서 부자유와 억압을 느끼고 끝없이 인간해방을 탐구하는 원초적 인간감성을 향한 그리움과 인간성 복원을 추구했다.

2015년 6월 28일 일요일

윌리엄 셰익스피어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426~1616423)는 영국의 극작가 시인이다 그의 작품은 영어로 된 작품 중 최고라는 찬사를 받으며 셰익스피어 자신도 최고의 극작가로 손꼽힌다 그는 자주 영국의 "국민 시인""에이번의 시인"으로 불렸다
 
작품 세계
그가 쓴 작품의 수는 각본이 36편이고 154편의 14행시(소네트)가 있다
 
그의 희곡 전집은 1623년 극단 동료의 손으로 편찬되어 세상에 나왔다 그에 대한 평가는 생전에 이미 최대의 찬사를 받았고 죽은 후에도 계속 숭앙의 대상이 되어 거의 신격화되었다 비평가 칼라일이 "영국 식민지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위대한 인류의 유산이었다 그는 '온화한 셰익스피어'라고 불리었지만 인간 심리의 통찰에는 비할 수 없는 넓은 안목을 가졌고 완성 과정에 있던 근대 영어의 잠재능력을 극도로 발휘하여 시극미(時劇美)의 최고를 창조하였다
 
희곡
셰익스피어는 르네상스 영국 연극의 대표적 극작가로서 사극 희극 비극 희비극 등 연극의 모든 장르를 섭렵하는 창작의 범위와 당대 사회의 각계각층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관객층에의 호소력으로 크리스토퍼 말로 벤 존슨 존 웹스터 등 동시대의 탁월한 극작가 모두를 뛰어넘는 성취를 이루었다 [27]
 
 
"요정과 함께 춤을 추는 오베론 티타니아 퍽"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c 1786 Tate Britain
인물[편집]
특히 유럽 본토에 비해 다소 늦게 시작된 영국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의 교차적 흐름 속에서 그가 그려낸 비극적 인물들은 인간 해방이라는 르네상스 인문주의 사상의 가장 심오한 극적 구현으로 간주된다 [27] 1580년대 말로의 주인공들이 중세적 가치에 거침없이 도전하는 상승적 에너지의 영웅적 면모를 구현하고 있고 1610년대 웹스터의 주인공들이 인문주의적 가치의 이면에 놓인 어두운 본능의 세계에 함몰되는 추락의 인간상을 대변한다면 15901600년대에 등장한 셰익스피어의 주인공들은 중세적 속박과 르네상스적 해방이 가장 치열하게 맞부딪히는 과도기의 산물로서 그러한 상승과 추락의 변증법을 극명하게 체현하고 있다 [27]
 
셰익스피어 극은 인간관계에서 생겨나는 문제를 가장 밑바닥에 깔고 있다 셰익스피어에게 인간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이 없었다면 그의 극이 이처럼 재미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28] 더욱이 셰익스피어의 인물들은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는 존재들이다 [27] 무엇보다 셰익스피어가 초시대성을 획득하는 극소수의 작가 반열에 드는 것은 특정한 시대정신의 명징한 관념적 표상이 아니라 무한한 모순의 복합체로서의 인간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27] 조화롭게 통합된 존재가 아니라 분열적으로 모순된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치열한 인식이 르네상스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서구 문화와 문예를 혁신하는 원동력이었다면 그러한 인식의 비등점을 이룬 낭만주의 모더니즘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활발히 탐구되고 공연되었다는 사실은 그것이 박제된 고전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고전임을 여실히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27]
 
"햄릿 호라티오 마르셀루스 햄릿 아버지의 유령"
헨리 퓨슬리 17805
셰익스피어의 탁월함을 증명해 주는 또 다른 점은 그의 문학적 연극적 상상력과 감칠맛 나는 표현력을 들 수 있다 [29] 셰익스피어는 자신이 속한 극장의 구조를 십분 활용하면서 구조상의 제약을 뛰어넘는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관객과 독자를 매혹한다 [29] 같은 이야기 소재라도 셰익스피어의 손에 들어가면 모든 이의 정서에 공감을 줄 수 있는 보편성을 갖게 된다 [29]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시공을 초월하여 거의 모든 삶의 영역을 탐구해 볼 수 있는 요소들이 들어 있다 [29] 심지어 현대의 경영학자들이나 정치가들에게도 셰익스피어는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준다 [29] 또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햄릿의 유명한 대사처럼 셰익스피어는 감히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숱한 명대사를 남겼다 [29] 작품 속 표현 한 마디 한 마디가 관객들로 하여금 무릎을 치게 만들고 교묘하고 신비로운 표현은 그 속에 인생의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다 [29] 오늘날 영어의 풍부한 표현력은 셰익스피어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9]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인생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그의 작품이 가져다 주는 문학적 향취에 취해 감탄하게 된다 [29]
 
셰익스피어의 대사에는 운문과 산문이 혼재되어 있다 [28] 물론 절대적으로 많은 부분이 운문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는 극적 필요에 따라 산문으로 대사를 쓰기도 했다 [28]

2015년 6월 25일 목요일

창조주의 창조론에 대해서

창조주의(創造主義 Creationism)은 인간 삶 지구 우주가 신의 개입에 의한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의미한다 이 '개입'은 완전한 무에서의 창조일 수도 있고 이전에 있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연기론이나 이기론 등과 같이 만물 생성의 근본 원리에 관한 형이상학적 또는 종교적 논증의 한 부류로서 연구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신본주의 사회의 종교성에 의해 기독교 문화권 등에서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여졌으나 인본주의 철학이 등장하면서 도전받기 시작하여 현대에는 진화론이나 빅뱅 이론을 위시한 천체물리학 기타 자연의 기원에 대한 관점이 있는 과학 등과 모순되는 점이 많고 증거가 부족해 정설로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창조에 대한 의미부여도 각기 달라 기독교에서처럼 모든 것이 완전한 상태로 창조되었다고 보기도 하고 진화론 등 현대과학을 접목하여 '지적설계'의 과정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많은 종교에서 창조에 관한 설명은 해당 종교의 핵심적인 교리에 연관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때 중요한 부분은 과학 이론과 대립되는 부분이 아닌 신학적 철학적 본질인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이 문서에서는 전자를 '협의의 창조설'로 따로 묶어서 다룬다 

2015년 6월 24일 수요일

찰스 다윈의 진화론

진화(進化)는 생물 집단이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변화를 축적해 집단 전체의 특성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새로운 종의 탄생을 야기하는 관찰된 자연 현상을 가리키는 생물학 용어이다 여러 생물 종 사이에서 발견되는 유사성을 통해 현재의 모든 종이 이러한 진화의 과정을 거쳐 먼 과거의 공통 조상 즉 공통의 유전자 풀로부터 점진적으로 분화되어 왔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고 이러한 종분화가 관찰됨에 따라 진화는 현재 관찰된 자연현상으로서 과학계에 알려져 있다
 
진화는 세대에서 세대로 유전형질이 전달되는 도중에 일어나는 유전자의 변화가 누적된 결과이다 유전자 변화가 일어나는 요인은 돌연변이와 유성생식에 의한 유전자 재조합 등이다
 
진화가 일어나는 주요 작동 기제는 생물 집단과 환경의 상호 관계에 의해 유전형질이 선택되는 자연선택과 집단 안에서 이루어지는 유전자 부동이다 자연선택으로 인해 생물 집단이 환경에 적응하는데 유리한 유전형질은 다음 세대로 전달되고 불리한 형질은 사라지게 된다 한편 유전자 부동은 독립적인 유전형질들이 생존하고 재생산할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한다 이러한 진화의 과정을 거쳐 생물들은 환경에 적응하여 새로운 종들로 분화한다 생물들 사이의 상호 작용에 의한 진화의 결과로는 공진화와 공생이 있다 급격한 환경의 변화 등은 생물의 멸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진화생물학은 생물 집단에서 일어나고 있는 진화 현상을 연구하여 진화의 원인을 규명하는 이론을 정립하는 학문이다 진화생물학은 세기 무렵 화석과 생물 다양성에 대한 연구를 통해 종의 변화에 대한 여러 이론들이 제시됨으로써 출발하였다 오늘날의 진화생물학은 찰스 다윈과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가 년 공동으로 집필한 논문에서 자연선택의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이 이론은 다윈이 년 출판한 책 종의 기원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윈의 진화이론은 과학자들 사이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년대 무렵 과학자들은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과 멘델의 유전학을 조합하여 진화론을 한층 발전시켜 현대 진화 이론을 제시하였다 현대 진화론에서 진화 는 생물 집단 내에서의 유전자의 빈도가 세대가 지남에 따라 변화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세기 후반 이후 진화생물학의 연구 분야는 여러 방향으로 확산되었다 로널드 피셔 등에 의해 시작된 집단유전학은 진화의 작동 기제에 대한 보다 세밀한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집단유전학이 제시한 유전자 부동은 오늘날 진화를 이해하는 필수적인 개념이 되었으며 하디 와인버그 평형은 생물 종의 유지와 분화의 요인을 탁월하게 설명하는 이론을 제시한다 한편 수평적 유전자 이동의 발견은 생물 진화의 계통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오늘날의 진화 계통도는 다윈이 제시했던 생명의 나무를 폐기하고 다양한 생물의 유전자들이 얽힌 그물 모습으로 변했다 기무라 모토는 유전적 부동을 진화의 중요한 요인으로 파악하는 중립 진화 이론을 제시하였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진화의 역사와 고생물에 대한 연구를 근거로 단속평형설을 제기하였다 단속평형설은 종분화가 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같은 특정한 이유가 발생할 때 급격히 이루어지며 그렇지 않을 때에는 오랜 기간 동안 종들이 유지된다는 이론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의 결과 생물 집단이 얼마나 생존과 재생산에 성공하는가를 척도로 하는 진화도의 개념과 진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자연선택을 집단 단위로 파악하는 선택 단위의 개념을 제시하였다 도킨스는 유전자와 진화의 관계를 놓고 스티븐 로즈와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오늘날 진화에 관련된 학문들은 여러 가지 갈래로 나뉘어 심층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더 많은 증거들이 발견되고 진화 과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진화는 생물학을 체계화하는 핵심적인 원리가 되었다 또한 고속진화를 비롯한 종분화가 관찰됨으로서 단순한 증명된 생물학 이론을 넘어 관찰되는 사실 및 자연현상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현재 과학계에서는 진화라는 자연현상이 일어나는 속도를 결정하는 요인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2015년 6월 23일 화요일

인터넷의 발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인터넷(영어:Internet 누리망 문화어: 인터네트)은 컴퓨터로 연결하여 TCP/IP(Transmission Control Protocol/Internet Protocol)라는 통신 프로토콜을 이용해 정보를 주고받는 컴퓨터 네트워크이다
 
인터넷이란 이름은 1973TCP/IP를 정립한 빈튼 서프와 밥 간이 네트워크의 네트워크 를 구현하여 모든 컴퓨터를 하나의 통신망 안에 연결(Inter Network)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이를 줄여 인터넷(Internet)이라고 처음 명명하였던 데 어원을 두고 있다 이후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 라고 불리면서 컴퓨터가 서버와 클라이언트로써 서로 연결되어 TCP/IP를 이용해 정보를 주고 받게 되었다
 
복수의 통신망을 집합시킨 광역 통신망을 뜻하는 일반명사를 인터네트워크 (internetwork)라고 하는데 미국 국방성의 아파넷은 이러한 인터네트워크를 본격적으로 구축한 최초의 사례이다 아파넷은 초기에는 연구목적으로 쓰였으나 참여 기관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목적으로 아파넷을 쓰고자 하는 요구가 많아졌다 또한 컴퓨터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프로토콜을 재정비할 필요성이 부각되었다 1983년 미국 국방성은 군사용 네트워크 기능을 밀넷(MILNET Military Network)으로 분리시키고 아파넷은 민간용 네트워크가 되었다 또한 초창기에 사용하던 NCP(Network Control Program)보다 데이터 전송 속도 및 안정성이 향상된 TCP/IP를 공식 프로토콜로 도입했다 이로 인해 인터넷 컴퓨터 네트워크의 기본 구조가 갖춰졌으며 이 때를 즈음하여 인터넷 은 단순히 일반명사 인터네트워크 의 약어가 아닌 고유명사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internetwork 의 약어인 internet 과 구별하기 위해 고유명사 인터넷은 Internet 또는 INTERNET 등으로 표기한다 인터넷은 LAN 등 소규모 통신망을 상호 접속하는 형태에서 점차 발전하여 전 세계를 망라하는 거대한 통신망의 집합체가 되었다 인터넷에는 PC 통신처럼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심이 되는 호스트 컴퓨터 (서버컴퓨터)도 없고 이를 관리하는 조직도 없다 인터넷을 대표하는 조직으로 ISOC(Internet Society)가 있지만 인터넷을 총괄 관리하는 기구는 아니다 그러나 인터넷을 총괄적으로 관리하지는 않지만 인터넷상의 어떤 컴퓨터 또는 통신망에 이상이 발생하더라도 통신망 전체에는 영향을 주지 않도록 실제의 관리와 접속은 세계 각지에서 분산적으로 행해진다 [3]
 
대중적인 월드 와이드 웹은 하이퍼텍스트 전송 프로토콜(HTTP)과 함께 사용되고 HTTP로 되어 있는 웹 페이지를 보기 위한 웹 브라우저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 모질라 재단의 모질라 파이어폭스 등을 이용한다
 
인터넷은 표준 인터넷 프로토콜 집합(TCP/IP)을 사용해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사용자들에게 제공되는 지구 전체의 컴퓨터 네크워크 시스템이다 인터넷은 개인 학교 기업 정부 네트워크 등을 한정적 지역에서 전체 영역으로 유선 무선 광케이블 기술 등을 통해 연결하여 구성한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이다 인터넷은 하이퍼텍스트 마크업 언어(HTML)나 전자 우편을 지원하는 기반 기술 등을 통해 광대한 범위의 정보 자원과 서비스들을 운반한다
 
인터넷 구축에 사용된 하드웨어와 프로토콜은 전화 음악스트리밍 영화스트리밍 홈카라오키 게임 홈서버 등의 서비스를 그대로 구현하고 있다
 
신문이나 도서 등의 출판물들도 웹사이트 기술에 맞춰 새롭게 구현되었는데 블로그나 RSS 등과 같은 형태로 독자들에게 서비스되었다 인터넷에 의해 사람들의 소통방식도 인스턴스 메시지 인터넷 포럼 SNS 등으로 진화해 나갔다 아웃렛이나 소규모 상인 도매상의 영역에서도 온라인 쇼핑몰이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인터넷을 통한 기업 간 거래와 금융서비스 등에 의해 전체 유통체계도 영향을 받게 되었다

2015년 6월 22일 월요일

세계 4대 문명에 대해서 알아보아요

문명의 발생지


세계 4대 문명에는 B.C. 4000~B.C. 3000년경 큰 강 유역에서 발달한 최초의 인류 문명 발생지들이 있는데 인류의 발생지로 여겨지는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나열해서 고대 문명의 발상지로는 나일 강변의 이집트 문명 티그리스 ·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도의 인더스 강 유역의 인더스 문명 중국 황허 유역의 황허 문명을 들 수가 있다. 이들 지역은 큰 강의 유역으로 교통이 편리하고 관개 농업에 유리한 물이 풍부하며 공통적으로 청동기 문자 도시 국가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집트 문명 발상지: 나일 강 - 멤피스
정치와 종교를 결합한 신권 정치(파라오=신의 아들일 정도로 왕권 강력) 사후세계(미라 사자의 서) 태양력 측량술 기하학 의학 등 실용학문발달 파피루스기록 피라미드 스핑크스 등.
 
메소포타미아 문명 발상지: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 - 우르와 라가시
수메르인이 지구라트(거대신전) 태음력 60진법 함무라비 법전 쐐기문자등 국가기반마련. 바빌로니아왕국 등.
 
인더스 문명 발상지: 인더스 강
아리아인 하라파 모헨조다로 도시 문명 도로망 공중목욕장 철기 카스트제도 그림문자 등 사용. 농경 및 목축을 하면서 "바닷길"로 메소포타미아와 무역 등.
 
황하 문명 발상지: 황하
조 수수재배 가축 토기 갑골문자 은나라 은허 유적 신정 정치 등.

2015년 6월 21일 일요일

전화기의 역사

전화의 역사

최초의 다소 불안정한 모델은 전기 파동신호를 이용한 것으로, 최초의 모델은 1849년 쿠바의 하바나에서 이탈리아인 안토니오 무치에 의해 개발되었다. 현재의 안정화된 모델은 1876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에 의해 처음 고안되었으며 1878년 매사추세츠 보스턴에 처음으로 전화 교환국이 설립되었다. 이후 100년이 넘는 오랜 세월동안 최초 발명자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가, 2002년 미국 의회는 최초의 발명자를 안토니오 무치로 인정하였다. 당시 그는 자금이 부족해 발명 사실을 세상에 알릴 수 없었고, 이미 그는 병으로 몸져 누운 상태였다. 한편 그는 1849년 이것을 발명할 당시 '텔레트로포노(teletrofono)'라고 불렀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특허 출원 도중 같은 전화를 출원하려는 사람이 같은 날에 특허 출원을 하여 위기가 찾아왔으나 그레이엄 벨이 두 시간 더 빨라 최초의 발명자로 인정을 받게 된다.

2015년 6월 18일 목요일

안경의 기원



최초의 시력 보조 기구를 개발한 수도사들
 
최초의 반구형 연마 렌즈를 만들어낸 사람은 13세기 이탈리아의 수도사들이었습니다 이 렌즈는 확대경처럼 작동했습니다 렌즈를 만들기 위해 수도사들은 베릴(beryl)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석영을 사용했는데 그 후 1267년 옥스포드 프란치스코회의 수도사인 Roger Bacon은 특별한 방식으로 연마된 렌즈로 작은 글자를 확대할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했습니다
 
무라노: 안경의 탄생지
 
지금도 전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는 베니스 무라노의 유리 제품은 안경의 탄생지라고 부를 만합니다 13세기 필요했던 연질 유리를 제조할 수 있었던 유일한 공장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머지 않아 최초의 품질 사양이 정의되기에 이릅니다 읽기 보조 기구라고 불렸던 이 안경은 연마된 볼록 렌즈를 사용했고 안경 테두리는 쇠나 뿔 또는 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당시에는 단 하나의 산악형 스타일만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최초의 안경은 원시를 가진 사람들이 책 등을 읽는 것을 도와주는 시력 보조 기구로만 사용되었습니다
 
신분의 상징으로 사용된 안경
 
현대의 안경과 유사한 최초의 안경이 제조된 것은 약 200년 후였습니다 리벳형 안경은 템플형 안경으로 대체되었습니다 프레임은 하나로 이루어져 있었으므로 부자들만이 쇠나 동으로 만들어진 안경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특히 큰 안경들이 신분의 상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시력 보조 기구의 착용을 보다 편안하게 하기 위해 가죽으로 된 코 브리지가 최초로 사용되었으나 그 당시 가장 큰 문제는 사실 세팅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안경이 코에서 흘러내렸고 안경이 너무 무거워 사용자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소위 뉘른베르크 테두리의 안경이 시장에 나타난 것은 18세기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안경에 코 분쇄기 라는 별로 달갑지 않은 이름을 붙였지만 이 안경은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안경은 그 때까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던 뛰어난 착용감을 제공했습니다
 
18세기 말에는 단안경(monocles)이라고 불리는 단일 렌즈가 달린 안경이 널리 유행했습니다 독일과 영국의 상류 사회 여성과 신사들이 단안경을 착용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노우즈 핀처 (nose pincher) 안경을 선호했습니다 또한 단일 렌즈가 달린 안경은 코 위에 착용할 뿐만 아니라 눈 주위 근육으로도 지탱되었습니다 프랑스제 안경의 이점은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 재빨리 벗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독일의 서쪽 사람들은 노우즈 핀처 를 끼고 있다가 들키면 창피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안경
 
안경이 현재의 모양과 해부학적으로 완벽한 디자인을 갖춘 것은 1920년이 되어서였습니다 오늘날의 안경은 모양과 소재가 매우 다양하며 선택의 폭도 엄청나게 넓습니다 안경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시력 보조 기구로 자리매김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패션 액세서리가 되었습니다 

2015년 6월 17일 수요일

향수의 기원이라고 하네요



향수의 기원은 종교적 의식 곧 신과 인간과의 교감을 위한 매개체로부터 출발하는데 그 역사는 약 5 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을 신성하게 여겨온 고대의 사람들은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몸을 청결히 하고 향기가 풍기는 나뭇가지를 태우고 향나무잎으로 즙을 내어 몸에 발랐다고 한다
 
고대의 향료는 훈향(薰香)으로서 종교의식에 사용되었고 몸 또는 의복에 부착하는 풍습은 몸의 청정감과 함께 정신미화를 위하여 비롯된 것이다 방향의 발상지는 파미르 고원의 힌두교국인 인도라는 것이 정설이다 인도에는 후추를 비롯해서 침향 ·백단 그 밖에 열대성 향료식물이 많아서 힌두교의 분향의식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향수는 인류가 최초로 사용한 화장품인 셈이다 그후 향수는 이집트 문명권을 거쳐 그리스와 로마 등지로 퍼져 귀족계급의 기호품이 되었다 당시의 상인들은 부피가 작고 값이 비싼 향료를 화폐 대용으로 사용하였다고도 한다 한국에서도 오래 전에 향수가 보급되었는데 372년에 고구려의 승려가 382년에 백제의 승려가 각각 중국에 파견되었다가 돌아오면서 향료도 함께 수입하였다고 한다
 
향료 사용의 대중화는 신라시대의 귀부인들로부터이며 그것은 향료주머니 즉 향낭(香囊)을 몸에 지녔다는 것으로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근대적 의미의 향수가 나온 시기는 1370년경으로서 지금의 오 드 트왈렛풍의 향수인 헝가리 워터가 발명되었다 이것은 헝가리의 왕비인 엘리자베스를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증류향수이며 최초의 알코올 향수이다 이 향수로 인하여 그녀는 70세를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폴란드의 왕으로부터 구혼을 받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뒤 1508년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있는 성 마리베라의 도미니크회 수도사가 향료조제용 아틀리에를 개설 유리향수를 제조하면서부터 그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1533년에는 피렌체의 명문가문인 메디치가()의 딸 카트린 드 메디시스와 프랑스의 앙리 2세가 결혼하면서 그녀의 조향사(造香師)L 비앙코가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에서 향료 ·향수가게를 열었는데 이것이 최초의 향수전문점이다 

2015년 6월 16일 화요일

에피톤프로젝트 그대는 어디에 듣기/가사

에피톤프로젝트 그대는 어디에

눈물은 보이지 말기
그저 웃으며 짧게 안녕이라고
멋있게 영화처럼 담담히 
우리도 그렇게 끝내자

주말이 조금 심심해졌고
그래서일까 친구들을 자주 만나고
챙겨보는 드라마가 하나 생겼고
요즘엔 나 이렇게 지내

생각이 날 때 그대 생각이 날 때
어떻게 하는지 난 몰라
애써 아무렇지 않게 마음은 담대하게
그 다음은 어디서부터 어떡해야 하니

환하게 웃던 미소 밝게 빛나던 눈빛
사랑한다 속삭이던 그댄 어디에
사랑하냐고 수없이도 확인했었던
여렸던 그댄 지금 어디에

웃기도 잘 했었고 눈물도 많았었던
사랑이 전부였었던 그댄 어디에
같이 가자며 발걸음을 함께 하자며
나란히 발 맞추던 그댄 지금 어디에

환하게 웃던 미소 밝게 빛나던 눈빛
사랑한다 속삭이던 그댄 어디에
사랑하냐고 수없이도 확인했었던
여렸던 그댄 지금 어디에

웃기도 잘했었고 눈물도 많았었던
사랑이 전부였었던 그댄 어디에
같이 가자며 발걸음을 함께 하자며
나란히 발맞추던 그댄 지금 어디에

사랑한다고 할때는 언제고 나를 이렇게 힘이들게 만들면 안되잖아 쉽게 한 고백처럼 느껴져서 나를 떠나갔니 그래서 나를 잡고 싶지 않은거니 욕심이 과했구나 너에게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건가요.

2015년 6월 15일 월요일

성시경 어느 멋진 날 듣기/가사

성시경 어느 멋진 날

참 맑았던 그날 눈부신 어느 멋진 날 가끔식 부는 바람이 코끝에 간지럽고
나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깝던 하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좋아서 널 불렀어

한없이 들뜬 나를 날 바보로 만든 한 마디 헤어지자고 다신 보지 말자고 
한없이 놀란 나를 그렇게 남기고 떠나던 햇살이 밉던 Oh! 어느 멋진 날 (Oh! 그날)

사람이 참 많았어 모두 웃고 있었어 나 혼자 슬퍼지는게 화가 나서 더 웃었어

눈물이 흘러 내릴까봐 남들이 쳐다볼까봐서 Oh 그래서 혼자 웃었던거라고 Oh! yeah!

한없이 들뜬 나를 (한없인 들뜬 나를 baby)
날 바보로 만든 그 한 마디
헤어지자고 다신 보지 말자고
한없인 만난 나를 그렇게 남기고 떠나던
햇살이 밉던 오 어느 멋진날


한없이 들뜬 나를 (한없인 들뜬 나를 baby)
바보로 만든 (바보로 만든 한 마디)
이젠 헤어지자고 다신 보지 말자고 모두 끝난거라고 yeah
한없이 만난 나를 그렇게 남기고 떠나던
햇살이 밉던 (햇살이 밉던) 어느 멋진날

니가 떠나던 그날 Oh 어느 멋진 날


어느 멋진 날이 우리에게도 오겠지요. 역설적이게도 이노래는 어느 멋진날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어쩌면 반어적 표현의 멋을 보여준 곡이라고 생각해요 성시경 2집 참 간만에 들었는데 너무 좋네요 

2015년 6월 14일 일요일

500일의 썸머라는 영화를 봤어요

남자가 사랑할 때 물론 이영화는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사랑의 기승전결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만남과 설렘, 그리고 기다림과 사랑, 눈의 대화, 그사람에 대한 생각의 변화를 여실히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 사람의 마음은 모두 알기 어렵지만, 다들 공통분모를 지고 있나보다. 너무 잘만든 영화였다.

2015년 6월 12일 금요일

날이 너무 화창해서 기분이 좋지 못하다

항상 밝은 날이 이어지니까는 기분이 점점 더 우울해지는 것 같다. 더운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기분이었을까? 아프리카는 항상 이렇게 푹푹찌는 날씨일텐데 어떻게 그렇게 버틸 수 있는거지 궁금하다. 아니 날씨에 영향을 받는 나란 사람은 또 뭐고......

2015년 6월 10일 수요일

오늘은 비가 온다네요 바람도 많이 불기도 한다네요

비가안와서 너무 많은 걱정을 했어요 농작물을 재배하는 것도 아니고 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긴 한데, 비오는 것을 좋아하는데 추적추적 비내리는 것도 좋아하고 아무튼 비내리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건 뭐 날이 맨날 쨍쨍하니까 오히려 더 우울하네요 비야 내려라! 장마야 어서 오너라!

하이너 뮐러의 몸젠의 블록에 대한 고찰

기번이후의 최고의 역사가는 몸젠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역사가의 고뇌는 제도권과 기득권에 대한 항의이다. 역사가는 자신의 숙명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너무도 뼈아프다. 쓰지 않는 괴로움과 쓰지 못하는 괴로움의 연결고리는 그를 좀먹기도 하고 있다. 지식인의 고뇌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2015년 6월 9일 화요일

K.will케이윌 오늘부터 1일


오늘 뭐하니 너 지금 바쁘니
별일 없으면 오늘 나랑 만나줄래 
할말이 있어 뭐 별 얘기는 아닌데
나 너를 좋아하나봐 


이런 말 나도 처음이야
You're my lady you’re my baby 
정말 나 장난 아냐
오늘부터 지금부터 
내꺼해줄래 baby 

못생긴 애들 중에 
내가 제일 잘 생긴 것 같대 
내가 뭘 어떡하면 너 내 맘 알겠니
너만 생각하면 미치겠어 woo~ hoo~
아주 잘 생기진 않았는데
내가 웃을 땐 조금 괜찮은 것 같아
웬만한 남자보다 내가 더 잘할게 my love 
너를 사랑해 

두 눈을 감고 하나 둘 셋을 세 
두 눈을 뜨고 보이는걸 얘기해봐 
잘 안보이니 네 남자가 안보이니
우리 오늘부터 1일 

이런 말 나도 처음이야
You're my lady you’re my baby 
정말 나 장난 아냐
오늘부터 지금부터 
내꺼해줄래 baby 

못생긴 애들 중에 
내가 제일 잘 생긴 것 같대 
내가 뭘 어떡하면 너 내 맘 알겠니
너만 생각하면 미치겠어 woo~ hoo~
아주 잘 생기진 않았는데
내가 웃을 땐 조금 괜찮은 것 같아
웬만한 남자보다 내가 더 잘할게 my love 
너를 사랑해

내게 와 고민하지 말고
다가와 망설이지 말고
나 조금 부족한 건 알지만
이세상에 누구보다 
너를 사랑해 baby

잘 생긴 애들 중엔 
착한 남잔 찾을 수가 없대 
내가 그 누구보다 착한걸 알잖니 
너만 생각하면 미치겠어 woo~ hoo~

사람들이 다들 그러는데 
너랑 나랑 둘이 제일 잘 어울린대
그 어떤 남자보다 내가 더 잘할게 my love 
너를 사랑해

2015년 6월 8일 월요일

아 진짜 무료한 하루네요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은 그런 날이 있잖아요. 오늘이 꼭 그런날인 듯 합니다. 주말을 너무 찐하게 보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오늘 월요일이 너무도 길게만 느껴집니다. 역시 사람은 참 간사한 동물 같아요. 그리고 제 육체도 정말 간사하네요. 일을 끝내고 어서 운동을 해서
죽어있는 몸을 어서 긴장상태로 올려야겠어요!

2015년 6월 4일 목요일

문화예술을 즐긴다는 것은

문화예술을 즐기고 좋아하고 관심있어 하는 것은 즉 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공감하고 즐기는 것은 그 사회의 이면을 잘 관찰하려고 노력하는 열정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문화의 힘은 사회와 국가의 힘과 다르지 않다.

2015년 6월 3일 수요일

테이 같은베개 듣기/가사

테이 같은베개 

하룻밤 자고나면 괜찮을거라..
그 밤이 어느새 천번째 밤이야..
니가 떠난 그 날부터 매일밤 나를위로해줬던건..
언젠가 니가 내게 사준 베개야..
한시도 떨어져 살수가 없을때..
서로같은 베개위에서라도..
꼭 잠들자고 약속했었던..

똑같은 베게 베고서 잠이들면..
어디서든 함께있는 거라던..
꿈속에서도 헤어지지말자던..
그런 니가 너무 그리워..

잠들때까지 전화기를 붙잡고..
사랑한다는말 지겹게 나누고..
두 베게가 하나되는 그 날을..
그리며 행복했던 날..

이제는 그 베개를 끌어 안고서..
눈물을 흘리고 후회를 흘리고..
너에게 다 미쳐주지 못했었던..
나의 마음을 또 흘리지..

똑같은 베게 베고서 잠이들면..
어디서든 함께있는 거라던..
꿈속에서도 헤어지지말자던..
그런 니가 너무 그리워..

언젠가 잊혀질 날이 올 것 같아서..
슬픔도 멈출날 올 것 같아서..
외려 두려워 시간이 내 맘까지 앗아갈까..

아직도 너만 꿈꾸고 있는 바보..
이런 나도 잠들날이 올까봐..

똑같은 베게 베고서 잠이들면..
어디서든 함께있는 거라던..
꿈속에서도 헤어지지말자던..
그런 니가 너무 그리워..

사랑이 눕던 그 곳에 그 자리위에..

영원토록 이 거릴 또 누워도..
너와 똑같은 추억 하나 가진 날..
그래도 너라서 고마워..


테이의 명곡 같은베개 솔직히 멜로디보다는 가사가 좀 와닿는다, 하나의 유기적 연결고리를 배게로 표현한 것이 작사가의 센스가 눈에 보인다.

2015년 6월 1일 월요일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RS란?

중동호흡기증후군(中東呼吸器症候群, 영어: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MERS 머스[*]) 혹은 메르스[1]는 중동호흡기증후군 코로나바이러스(MERS-CoV)에 감염되어서 걸리는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이다. MERS-CoV는 박쥐로부터 유래한 베타코로나바이러스이다. 낙타나 박쥐 따위의 동물이 바이러스의 주요 매개체로 추정되고 있다.
 
징후와 증상
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는 초기 보고서[2]에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SARS, '사스')와 비교됐고, 사우디아라비아판 사스 바이러스로 불리고 있다. 20126월에 발생한 첫 환자는 "7일간 발열, 기침, 가래, 숨가쁨 증상 내력"이 있었다. 실험으로 확증된 사우디아라비아 내 사례 47건에 대한 한 보고서는 중동호흡기증후군의 가장 흔한 주증상을 환자 중 98%가 발열, 83%가 기침, 72%가 숨가쁨, 32%가 근육통인 것으로 보았다. 또한 잦은 위장 내 증상도 있었는데 환자 중 26%가 설사, 21%가 구토, 17%가 복통이었다. 환자 중 72%는 인공호흡을 요구했으며, 여성 1명당 남성 3.3명이 발병한 것으로 드러났다.병원에서 발생한 중동호흡기증후군에 대한 한 연구 보고서는 잠복기를 5.5(신뢰구간 95%, 범위는 1.9일에서 14.7)로 추정했다.중동호흡기증후군은 증상 없는 질병에서 급성호흡곤란증후군으로 이어지는 심각한 폐렴까지 달할 수 있다. 신장부전증, 파종성혈관내응고, 심막염 증상도 보고되었다.
 
 

다산 정약용 선생


정약용(丁若鏞, 176285(음력 616), 경기도 광주[1] ~ 183647(음력 222))은 조선 정조 때의 문신이며, 실학자·저술가·시인·철학자·과학자·공학자이다. 본관은 나주, 자는 미용(美庸), 호는 사암(俟菴탁옹(籜翁태수(苔叟자하도인(紫霞道人철마산인(鐵馬山人다산(茶山),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이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중농주의 실학자로 전제 개혁을 주장하며 조선 실학을 집대성하였고, 수원 화성 건축 당시 기중가설(起重架說)에 따른 활차녹로(滑車轆轤 : 도르래)를 만들고 그를 이용하여 거중기를 고안하여 건축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또한, 유교 경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당대 조선을 지배한 주자학적 세계관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시도하였다. 문집으로 유배 생활 중 대부분이 저술된 여유당전서가 있다.
 
정약용은 유형원·이익을 통해서 내려온 실학사상을 한 몸으로 집대성했다. 한국 근세에서 남인학파의 불평의 비판과 정치적으로 비현실적인 태도에 비하여, 다산은 남인학파 중에서도 정치적으로 다분히 실제적인 경험을 지녔고, 자기의 학문·사상의 체계화를 정리한 귀양지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보내기까지의 중앙 관리의 경력, 지방행정의 경험, 연천(連川) 방면의 암행어사 행각, 청년 시절의 왕환(往還)과 부친의 임소(任所)에 수행한 견문, 그리고 귀양살이 등은 그대로 생생한 교훈이며, 평생을 통하는 힘이었다.
 
이와 같은 견문과 경력은 그의 사상에 현실적인 인식과 자료로 제공되었다. 다른 실학자들처럼 성리학·천문·지리·역상(曆象산학(算學의복(醫卜)에 관련된 저서는 물론 경세유표목민심서, 흠흠신서등은 모두 다산학의 귀결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경제·사상의 총괄 편으로 정박명절(精博明切)하며 탁견(卓見)이 아님이 없다.
 
이러한 사상이 급속도로 붕괴해 가던 조선사회에 적절히 적용되지는 못했지만, 다산이야말로 조선조 학계에 전개된 진보적인 신학풍을 한 몸으로 총괄·정리하여 집대성한 실학파의 대표인 것이다. 일찍이 위당 정인보는 선생(茶山) 1인에 대한 요구는 곧 조선사의 연구요, 조선 근세사상의 연구요, 조선 심혼(心魂)의 명예(明銳) 내지 전조선 성쇠존망에 대한 연구라고까지 평하여 그의 학문·저술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나타내었다. 최근에 와서 다산 연구의 열의가 높아지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